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자흐 칸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5세기 중반에 아불 하이르가 이끄는 우즈베크 족을 빠져나온 세력에 의하여 건국되었다. 우즈베크 칸국을 세운 샤이바니 칸과 1510년에 맞붙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. 자세한 사항은 [[히바 칸국]] 문서 초반 참고 이후 우즈벡 칸국의 후신인 남쪽의 [[부하라 칸국]]과 대립했으며, 북서쪽의 [[시비르 칸국]], 서쪽의 [[노가이 칸국]]과 동쪽의 [[모굴리스탄 칸국]]과도 경쟁 관계를 유지하였다. 모굴리스탄 칸국에 대하여는 우세했는데 먼저 발하슈 호 일대인 서 모굴리스탄을 점령하였고 서쪽의 노가이 칸국과 [[아스트라한 칸국]]도 연파하여 [[투르키스탄]]의 패자가 되었으나 러시아 원정은 실패하였다. 17세기 이후로는 [[천산 산맥]]의 대 주즈(Ұлы жүз)와 카자흐 [[스텝(지리)|스텝]]의 중 주즈(Орта жүз), [[카스피 해]] 연안 사막 지역의 소 주즈(Кіші жүз)의 세 개 부족으로 갈라졌으며, 이는 현대 카자흐스탄 사회와 행정 구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. 17세기 말 동부에서 발흥한 [[준가르]] 갈단 칸의 침공으로 알마티와 쉼겐트, 타라즈 등 [[발하슈 호]] 일대를 빼앗기고. 1710년, 카자흐의 세 주즈(Juzes) 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어 준가르에 대항하기로 결정한다. 그러나 카자흐 칸국 연합이 잠시 불화를 보인 틈을 타서 준가르의 지도자 체왕 랍탄(Tsewang Rabtan)은 [[1722년]] 대규모 침공을 가해 중부 카자흐 지역을 유린하고,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투옥되었다. 살아남은 카자흐 부족민들은 [[시르다리야 강]] 서부지역으로 대피하고, 일부는 토볼스크로 대피해 러시아 제국에 신종한다. 마침내 [[1729년]], [[아불 하이르 칸]]이 이끄는 카자흐 연합군은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, 안라카이 전투(Battle of Añyraqai)에서 40일간의 혈전끝에 준가르 대군을 상대로 귀중한 승리를 얻었다.[* 이 전투는 카자흐 역사에서도 유명한 전투로 전투가 치러진 알라쿨 호수 근처에 기념비도 설립되었다. 이 전투를 소재로 2012년 [[https://movie.daum.net/moviedb/main?movieId=89530|최후의 전사들]]이라는 영화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다. 한국에도 정식으로 수입되었다. 카자흐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, 억압적인 [[준가르]]의 통치를 상대로 자유를 추구하는 카자흐인들의 투쟁을 그려냈다.] 이후로도 [[준가르]]는 청나라와 교전-화친을 반복하며, 카자흐 중부 지역을 계속 침공했고, 한 때는 이르티시 강 유역 너머까지 점령해 카자흐 아빌라이 칸이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. 준가르와 카자흐의 기나긴 싸움은 1755년 준가르가 청나라에게 멸망함으로써 끝이났다. 이후에 중앙아시아에 손을 뻗치던 [[러시아 제국]]에 카자흐의 부족들이 차례차례 복속되었다. 1836년부터 1847년까지 [[카자흐인]]들은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다. 1847년 아블라이 칸의 손자이자 마지막 칸인 [[케네사리 칸]]이 키르기스 칸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후 카자흐인들의 국가는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전까지 지도에서 사라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